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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30

[논단] 국가R&D,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작성자 : 고등기술연구원      조회수 : 1,526

[논단] 국가R&D,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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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한 대응책 중 하나로 소재분야의 연구개발예산을 올해 8000억원 규모에서 내년에는 2조원 규모로 확대한다고 한다. 심지어 여당 유력인사가 소재부품 연구개발 비용을 특별회계를 만들어 충당하자고 제안까지 하는 상황이다. 또한 수소나 소재부품, 미세먼지, AI 등의 핵심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연구개발하기가 힘들다는 우스갯소리가 요즘 연구자들 사이에 공공연히 회자가 된다.

대외 환경변화에 대응해 정부가 다양한 연구개발 시책과 사업을 제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이러한 시책들이 연구개발의 다양한 속성들을 반영해 국가 차원의 전체 프레임이 정의되고 검토된 상황에서 제시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과학기술은 그 분야별로 시장으로 가기까지 연구개발기간과 기술변화주기가 아주 다양하다. 소재나 에너지, 그리고 거대공공 분야 등의 연구개발은 산업으로 연결되기까지 연구개발 수명주기가 참으로 길고, 반도체나 정보통신 기술은 그 주기가 상대적으로 무척 짧다. 과학기술분야별로 국내 기술성숙도도 또한 천차만별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산업에서 적용되는 연구개발은 다양한 기술들의 융합이 필수가 되고 있고 시장 변화에 아주 민감하다. 물론 대외환경 변화와 미래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정부의 정책 또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이러한 다양함을 반영해 프레임이 구축돼야 하며 이와 더불어 연구개발 투자의 지속성과 분야별 균형 있는 투자 전략 또한 프레임 속에 녹여야 한다. 하나의 산업이 글로벌 선두로 나서기 위해서는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전략에 따라 지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져야 가능하다. 원전과 반도체 등이 그 성공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균형적 측면에서는 기초기술에서부터 사업화까지의 단계 간, 과학기술과 산업분야별로 균형 있는 연구개발 예산 투입을 통해 핵심기술의 성숙도가 골고루 향상되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기술융합적 측면에서 연결성이 용이하고 산업생태계의 건전성을 유지하는데 있어 도움이 된다.

특히 4차 산업혁명 기술과의 연계성 측면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특정 산업의 위기가 올 경우에는 다른 타 산업으로의 진출을 통해 대안을 찾을 수 있으며, 국가 이기주의가 확산되는 요즘 에너지나 다른 산업분야에서 일본 수출규제 사례가 재발될 경우의 대비책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연구개발 과정에서 생산되는 자료와 경험의 지식화와 지식의 축적과 활용이다. 정부가 책정한 2020년 국가 연구개발 예산은 24조원을 상회하고 총 예산 대비 4.7%를 차지한다. 이러한 거대한 예산이 투입되는 연구개발에서 취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 중 하나가 연구개발의 성공 여부에 관계없이 그 과정과 결과에서 생산되는 경험과 자료이다. 국가에서 제시하는 연구개발 제도나 정책에서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내용은 찾아보기 어렵다.

예를 들면,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시작한 산업의 난제 해결에 도전하는 고난도 기술개발 사업인 ‘알키미스트 프로젝트’의 취지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과제별로 목표는 세계 최초 또는 세계 최고를 내세우고 실패해도 된다는 연구개발 사업이다. 근데 이 사업에 대한 우려는 실패를 해도 되는 연구라면 연구개발과정에서 생산되는 경험과 자료를 어떤 식으로 지식화해 축적하고 활용해 갈 것인가에 대한 계획이나 방법이 제시된 것이 없다는 점이다.

국가연구개발을 위해 부처와 기술 분야별로 수많은 로드맵이 작성됐다. 이러한 로드맵을 이용해 기술 수목도(Tree Diagram)를 분야별로 구축하고 관련 연구들에서 생산되는 자료와 경험을 형상화하고 지식화해서 축적해 가야 한다. 그리고 축적된 지식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매년 수십조의 예산이 미래를 위해 보다 효용성을 갖기 위해서는 이 부분이 국가 연구개발의 프레임에 필수적으로 반영돼야 한다.

국가연구개발은 미래 먹거리의 마중물이다, 연구개발 정책 수립과 사업기획 시 정권의 성과와 홍보로 무게중심이 이동해서는 안 된다. 연구개발의 수명주기는 5년이 아니다. 


고등기술연구원 염충섭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