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기술연구원

보도자료

Institute for Advanced Engineering

보도자료

INSTITUTE FOR ADVANCED ENGINEERING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12)
<65> 국내 첫 에너지학과 개설
에너지 육성 위해 귀국 부탁 
아주대 석좌교수로 연구 활동
에너지 학과·연구소·센터 신설
'경쟁력엔 기술력이 필수' 건의
대우에서 고등기술연구원 개설
김 회장, 경제 고도화 큰 그림
대우그룹 사라져도 뜻은 남아

2년 임기제인 한국전력기술(KOPEC) 사장의 둘째 임기를 1985년 말 마감한 나는 다시 미국에 가서 아들 진후의 신장 치료에 전념했다. 오스트리아 빈의 국제원자력기구(IAEA)를 오가며 국제원자력안전자문위원회(INSAG) 12인 위원의 한 명으로도 활동했다.

그러던 중 김우중 당시 대우그룹 회장이 여러 차례 연락해 에너지 분야를 육성하고 싶다며 아주대 석좌교수직을 제안했다. 기업·재단이 재정 지원해 강의는 재량껏 하고 연구 기회를 최대한 제공하는 석좌교수 제도는 한국 일반대학에서 아주대가 처음 도입했다. 김 회장이 77년 사재를 털어 학교법인 대우학원을 설립하고 인수한 아주 공대는 81년 종합대학으로 승격하며 아주대가 됐다. 
1994년 8월 아주대 에너지 연구센터 개소식에서 연설하는 정근모 박사.[사진 정근모 박사]

김 회장은 고교 선배로 청소년 시절부터 나를 각별히 아꼈다. 김 회장이 대우그룹을 창업해 ‘세계경영’을 시도한 것은 잘 알려졌지만, 대우재단을 세워 과학기술 진작을 위해 노력하고 월성 캔두(CANDU)형 원전 건설에 참여해 원자력 분야에도 기여한 사실은 비교적 덜 알려졌다. 나는 아픈 아들 곁을 지켜야 한다는 아버지의 심정과 조국의 부름에 응해야 한다는 과학기술자의 의무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귀국을 택했다.

87년 4월 아주대에 부임해 국내 첫 에너지학과를 개설하고 에너지 문제연구소도 세웠으며 에너지센터도 열었다. 에너지학과는 대학원 과정만 운영하며 전문가를 육성했다. 김 회장은 김효규 전 연세대 의대 학장을 아주대 총장으로 영입해 88년 의대를 설치하고 94년 아주대학병원을 세웠다. 경인 지역 보건의료 수요 급증을 내다본 혜안이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고등기술연구원의 모습. 아주대와 대우그룹 12사의 기술연구조합 형태로 설립됐지만 김우중 회장의 지시로 명칭에 '대우'를 넣지 않았다. 대한민국 전체의 산업을 위한 연구원이라는 의미에서였다고 한다. [중앙포토]
김 회장은 그룹 경쟁력을 키울 방안을 내게 물어왔다. 나는 “세계 경영을 지향한다면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선 자체 고등기술연구원을 세워야 한다”고 제안했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던 김 회장은 이를 받아들였다. 92년 아주대와 대우자동차·대우조선·대우중공업 등 대우그룹 12개사가 산업기술조합 형태의 비영리 사단법인을 세워 고등기술연구원(IAE)을 설립했다. 경기도 용인 백암마을의 대우연수원 인근 부지 924만㎡(당시 도량형으론 280만 평)를 제공하고 지상 10층의 건물도 세웠다. 나는 고등기술연구원 창립 원장을 맡아 산·학 협력을 추진할 수 있었다. 그런데 김 회장은 고등기술연구원 이름에 ‘대우’를 넣지 말자고 했다. 의아해진 내가 이유를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고등기술원은 대우그룹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모든 산업계가 활용해야 하지 않겠소.”

나는 순간적으로 가슴이 뜨거워졌다. 김 회장의 안목은 이토록 넓었다. 김 회장은 대우재단을 통해 학술계의 연구와 출판을 지원했고 아주대를 통해 대학 교육과 의료발전을 도모했으며 고등기술연구원을 통해 한국 경제의 첨단 기술화를 추진하려고 노력했다. 불행히도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대우그룹은 무너졌지만, 아주대·대우재단·고등기술연구원은 여전히 건재하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